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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현장”

赤松子 - 내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5.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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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현장”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피플 인사이드] 젊은 예술가 ‘요람’ 자처한 이지현 OCI미술관장
신진작가들과 함께 성장한 13년 차 관장…“건강한 예술 생태계 만들 것”
송암의 뜻 기린 예술 장학 프로그램으로 신진작가 100여 명에 기회 마련

이지현 OCI미술관장에게 미술관은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치열하지만 아름다운 현장이다. 사진 속 배경이 돼 준작품들은 현재 진행 중인 김지원 작가의 개인전 ‘한 발짝 더 가까이’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최기웅 기자

불어 전공자에서 미술사학 박사, 그리고 미술관장으로 이어진 이지현 OCI미술관장의 시간은 예기치 않은 전환의 연속이었다. 프랑스 어학연수 중 오르세미술관에서 마주한 한 필부의 대화가 인생을 바꿨다. 이후 미술사 연구에 뛰어든 그는 연구의 즐거움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았고, 학자의 길을 걸으며 2011년 박사학위를 마쳤다. 
이듬해 그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OCI미술관 관장직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2012년 1월 2일, 그는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OCI미술관은 OCI주식회사 창업주 고(故) 송암 이회림 선생의 사회공헌 뜻이 담긴 송암문화재단 산하 사립미술관이다. 1950년대부터 미술품을 수집한 송암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2010년에 문을 열었고, 이듬해 이 관장이 부임했다.
이 관장은 “미술사 연구 교수가 되고 싶었던 터라 미술관에서 일하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자신을 ‘동시대 미술 문외한’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 미술시장의 구조, 신진작가의 생태, 전시의 흐름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그 과정에서 중심을 둔 건 ‘젊은 작가와의 동행’이었다. 만 35세 이하 작가에게 창작지원금 1000만원을 지급하고, 미술관 전시 기회를 주는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 제도를 시행했다. 송암 선생이 장학재단을 만들었듯이 손녀인 이 관장 역시 일종의 예술 장학 제도를 이어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은 개관 이후 15년간 100여 명의 젊은 작가를 발굴했다. 그는 “지원금보다 중요한 건 함께하는 경험”이라며 “작가가 자기 세계를 찾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대학 전공과 관련 없는 미술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어요. 언어를 배우는 게 재미있었지만, 졸업 무렵 ‘이걸로 뭘 해 먹고살 수 있을까’ 고민이 커졌죠. 당시엔 프랑스 기업 취업도 드물었고 명품 산업도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학연수를 위해 프랑스에 갔죠. 어느 날 오르세미술관에서 너무나 평범한 부부가 한 작품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걸 듣고 자존심이 상했어요. 작품의 특성과 관련 작가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데,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미술사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귀국 후 미술사 석사과정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공부가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불어 원서를 사려고 그때 아마존을 처음 이용해봤어요.”
미술사는 단서로 퍼즐 맞추는 탐정 놀이와 비슷
뒤늦게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은 셈이네요?
“그렇죠. 미술사는 배우면 배울수록 매력적이에요. 사실 어학연수 후 통·번역 쪽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남의 말을 제대로 전달해야 하는 책임보다는 나만의 의견에 책임지는 학문이 더 좋았어요. 그래서 결혼 후 유학을 가고, 박사 과정 중에 아이도 낳았습니다. 공부는 힘들었지만, 진짜 즐거웠어요. 자료를 찾아 퍼즐 맞추듯 연구하는 과정이 탐정 놀이처럼 흥미로웠습니다.”
OCI미술관장직을 맡게 된 건 예정된 일이었나요?
“전혀 아니에요. 미술관엔 2012년 1월 2일부터 출근했는데, 사실 2011년 가을에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 저는 학자로서 교수가 되고 싶어서 거절했고요, 제 전공이 19세기 말 유럽 미술, 후기인상주의다 보니 OCI미술관의 컬렉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권유하셨고, 할아버지의 사적 공간이었던 곳이 미술관으로 개관한 만큼 제게도 의미 있는 일이어서 맡게 됐습니다. 처음엔 고미술도, 동시대 미술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치열하게 공부했어요. 3~4년쯤 지나니 우리 미술시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고, 10년쯤 되니 이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어요.”
미술관 건물에 대한 추억과 애정도 있겠네요?
“어릴 적 기억에 할아버지께선 굉장히 엄하신 분이어서 저에게 이곳은 ‘무서운 할아버지가 계신 곳’이었어요. 이 건물은 이북이 고향이셨던 할아버지가 서울로 와서 자리를 잡으신 곳이에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여기서 사셨죠.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도 이 건물은 팔지 않고 두셨다가 1987년에 증축과 개조로 ‘송암회관’을 세우시고 1989년 송암문화재단을 설립했어요.
당시 이곳이 아무나 올 수 없는 할아버지만의 내밀한 공간이었던 건 기억해요. 여기서 송암 선생님은 취미인 서예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골동품상을 불러 담소를 나누셨습니다. 말하자면 송암 선생님의 문화적 놀이터, 맨케이브 같은 곳이었어요. 송암 선생님이 돌아가신 3년 뒤 2010년에 OCI미술관으로 개관한 겁니다.”
‘송암회관’과 입구가 똑같이 생긴 건물이 인천광역시에도 있던데요.
“맞아요. 컬렉션이 걷잡을 수 없이 늘자 송암 선생님은 첫 공장용지가 있던 인천에 이곳과 똑같이 생긴, 하지만 약 세 배 더 큰 건물을 새로 지으셨어요. 평생 모으신 예술 컬렉션을 모두 그곳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전시해 놓으셨는데, 2005년에 땅과 건물, 컬렉션까지 통째로 인천시에 기증하셨어요. 이후 2년 뒤인 2007년에 돌아가셨어요. 마지막 할 일이셨던 것처럼요.”

송암 이회림 선생의 사적 공간이었던 곳을 활용해 개관한 OCI미술관은 손녀인 이지현 관장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최기웅 기자


15년간 신진작가 100여 명 창작 지원
미술관의 특성인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프로그램 공식 명칭은 ‘OCI 영 크리에이티브즈’(YOUNG CREATIVES)입니다. 장학 사업을 오래 해온 재단의 영향으로 일종의 예술 장학 제도를 해보면 어떨까 했어요. 잘하지만 지원이 필요한 젊은 예술가에게 창작 지원금을 주고 전시 기회도 제공해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2010년 당시엔 이런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스 외에는 젊은 작가가 지원받을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원 대상 신진작가 선정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7월 초 공모를 시작해 8월 말까지 약 두 달간 1·2·3차 심사를 거칩니다. 1차는 포트폴리오 심사, 2차는 서류 심사, 3차는 면접이에요. 심사위원은 총 7명으로 매년 다르게 구성합니다. 특정 학교나 작가 편향을 막기 위해 같은 심사위원이 다시 참여할 수 없도록 하다 보니, 심사위원단을 꾸리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은 일이에요. 미대 교수, 평론가, 큐레이터 등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고, 심사 종료 후에는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합니다.”
특별한 선발 기준이 있나요?
“기준은 ‘진짜 도움이 필요한 작가’입니다. 그래서 이미 큰 상을 받은 작가는 심사에서 제외하고 있어요. 아직 기반이 약한 작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작품 수나 완성도보다 자기 세계를 찾아가려는 태도, 열정과 진정성을 중요하게 봅니다. 3차 면접에는 저도 참여하는데, 늘 강조하는 건 ‘지원해줘서 고맙다’는 거예요. 지원자가 있어야 우리가 그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선정된 작가 중엔 정말 잘되거나 반대인 경우도 있을 듯한데요.
“개관 후 15년 동안 100명 가까운 작가가 프로그램을 거쳐 갔습니다. 그중 30%는 스스로 잘 성장했고, 30%는 아직 기회가 필요하며, 30%는 미술계를 떠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생활고나 가족, 건강 문제로 작업을 중단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고요. 활동을 중단했던 작가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 정말 반가워요.”
그중 기억에 남는 작가를 꼽는다면요?
“두 사람이 있는데, 이우성 작가와 양정욱 작가입니다. 이우성 작가는 20대 후반에 지원했는데, 평범한 청년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줬어요. 세대를 넘어 공감되는 감수성이 있었죠. 지금은 한 대형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또 한 명은 키네틱 조형을 하는 양정욱 작가예요. 보관과 운반의 기술적 한계로 거대한 설치 작품을 폐기해야 했을 땐 진짜 아까웠을 정도예요. 꾸준히 발전해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도 받았어요. 우리 신진작가에서 초대 개인전 작가로 성장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해외 젊은 작가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던데요.
“대만과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이 있어요. 대만 작가가 한국에 머무르며 작업하고, 한국 작가를 대만으로 보내 활동하게 하는 거죠. 체류비와 재료비를 일부 지원하고, 양국 작가가 교류하며 새로운 기회를 얻도록 돕는 게 저희 역할이에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작가들이 해외로 진출할 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이 큰 화두일 것 같습니다.
“그렇죠. 예술은 ‘버티는 힘’이에요. 젊은 작가 중엔 재능이 있어도 30대 중반쯤에 생계 문제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아요. 반대로 꾸준히 버틴 분들은 어느 순간 빛을 봅니다. 제가 늘 말하죠. ‘조금만 더 버텨요’라고(웃음). 그 과정에서 한 작가가 점점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에요. 매년 전시를 준비하며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시도를 하는지 살피는 게 즐겁죠. 한번 잘된 방식을 반복하기보다 끊임없이 변주하고 실험하는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 편이에요.”

송암문화재단의 대표 예술사업인 OCI미술관 전경. 11월 현재 맨드라미 작가로 알려진 김지원 작가의 색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 송암문화재단]


좋은 작가들이 ‘버티는 힘’ 갖도록 돕는 역할
전시 기획은 관장님의 의견이 주로 반영되나요?
“현재 큐레이터가 네 분 있습니다. 각자 맡은 전시는 전적으로 본인이 기획하고 있어요. 저는 큰 틀만 확인하고 세부 방향은 전적으로 큐레이터의 판단을 믿어요. 제가 늘 말합니다. ‘돈은 많이 못 주지만 하고 싶은 전시는 다 하게 해줄게’라고요(웃음). 큐레이터가 자신의 기획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미술관의 운영 원칙 중 하나는 ‘자율’입니다.”
10여 년간 현장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요?
“예술계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생태계예요. 제 역할은 그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거죠. 작품을 보는 눈보다 더 중요한 건 작가를 보는 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들이 성장할 시간을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관장님께 미술관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처음엔 낯설고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작가와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서 제 삶의 중심이 됐고요. 미술관은 완성된 결과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창작이 계속 이어지는 현장입니다. 학자로서 자료를 파고들던 시절엔 과거를 탐구했다면, 지금은 ‘이 사람은 앞으로 어디로 갈까’를 상상하며 현재와 미래를 봅니다. 송암 선생님이 그랬듯, 좋은 작가들이 마음껏 작업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l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미술관은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현장”

 

“미술관은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현장” - 월간중앙

불어 전공자에서 미술사학 박사, 그리고 미술관장으로 이어진 이지현 OCI미술관장의 시간은 예기치 않은 전환의 연속이었다. 프랑스 어학연수 중 오르세미술관에서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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