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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玄鳥)"는 어떤 새일까?

赤松子 - 내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5.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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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玄鳥)"는 어떤 새일까?

글: 옹위화(翁衛和)

서론

"천명현조(天命玄鳥), 강이생상(降而生商)"(하늘이 현오에게 명하여, 지상으로 내려가 상을 낳았다). 이 구절은 <시경(詩經). 상송(商頌). 현조(玄鳥)>에서 나왔고, 은상족(殷商族)의 조상신화이다. 다만 원문에서 현오가 어떤 새인지는 명확치 않다. 전통적인 주소(注疏)에 따르면 현조를 왕왕 제비(燕子)와 연결시켰다. 예를 들어, <이아(爾雅)>의 주(注)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연연(燕燕), 현조라고도 부른다...이 연연은 바로 지금의 제비(燕)이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간적(簡狄)이 제비알을 삼키고 설(契)를 낳았다는 전설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은허(殷墟) 5호유적지의 고고학적 발견은 이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제공했다: 유적지에서는 대량의 조형(鳥形)문물이 발굴되었다.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이름의 석조대조(石雕大鳥), 어응형옥패(魚鷹形玉佩)등은 모두 맹금(猛禽)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도상(圖像)고고, 조류특징판별과 문헌자료대비를 통해 새롭게 '현조' 토템의 진실한 신분 및 예제(禮制)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고대종묘제도와 혈연등급과 결합하여 부호(婦好)의 신분과 현조 토템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하고, 이를 통해 은허 5호유적지에서 출토된 것은 마땅히 신비(辛妃) 간적종묘(簡狄宗廟)라는 관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현조 토템의 신분고찰

은나라사람은 자칭 "현조"족이라고 말했다. 그 전설은 <사기. 은본기>의 간적이 알을 삼킨 신화와 <시경>의 기록에서 나왔다. 다만 고적(古籍)에서는 현오의 종료에 대한 해석이 일치하지 않는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현조가 제비(燕子)라고 하였고, <이아>에서는 "연연"이 현조에 대응된다고 주석을 달았고; 곽말약(郭沫若)은 봉황이라고 주장했으며, <사기>에서는 "현조추란(玄鳥墜卵)"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여전히 비금(飛禽, 나는 새)의 이미지(많은 사람들은 연조(燕鳥)로 해석한다)를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은허의 고고자료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조류형태특징(鳥類形態特徵): 은허6호유적지에서 출토된 백색대리석 새조각의 체형은 크고, 부리 부분이 구부러져 있으며, 복부에는 구멍이 있어, 꿰어서 찰 수 있고, 어응(魚鷹, 가마우지)의 형상에 부합하지, 제비의 섬세한 외관이 아니다. 제비는 체형이 작고, 꼬리부분이 교차되어 있으며, 부리가 뾰족하고 가늘어서 이 조각의 풍격과 부합하지 않는다.

문헌대비(文獻對比): 현조를 제비로 해석하는 것은 주로 <시경>의 주소(注疏)때문이다. 다만, <시경.상송.현조> 자체에는 단지 "현조"라고만 칭하지 어떤 새종류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이아>에서 인용한 "연연우비(燕燕于飛)"는 단지 주(周)나라때 제비에 부여된 별칭이다. 갑골문 복사(卜辭)와 후세의 전설에서, 물새와 맹금에 대한 숭배는 많은 경우 '어응'을 지칭했다. 예를 들어, 은상 사람들은 스스로 '만방현조씨(萬方玄鳥氏)"라고 자부했다. 즉 암암리에 조상이 소호씨족(少皞氏族)의 새토템숭배를 가리킨다. 위의 실물특징과 전설내용(어응이 알을 강에 떨어뜨리고, 간적이 주워서 먹었다)는 더더욱 물고기를 잡는 새의 경우에 부합한다.

이름과 상징: 어응은 고대에 "왕저(王雎)"라고 불렸다. 그 뜻은 "강하지왕(江河之王), 전장지조(戰將之鳥)"이고, 지고의 지위를 상징한다. 이 칭호와 은허5호유적지에서 출토된 "유아독존" 석조명문(石雕銘文)은 그 뜻이 일치한다. 이는 현조숭배가 조왕존비(鳥王尊卑)를 강조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조류학과 고고학증거를 보면, 은상의 "현조"토템은 실로 '어응'과 들어맞는다. 단순히 제비가 아니라. 현조(어응)의 이미지는 은상시기 문물중에서 자주 나타난다; 부호묘(婦好墓)에서 어응형 옥패와 석조가 출토되었는데, 제비형의 기물은 아주 드물다. 문헌에서 만일 현조는 단지 "검은색의 새"를 의미한다고 본다면, 어응(깃털색은 많은 경우 검은색이다) 역시 검은 새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단지 후세에 제비라고 곡해했을 뿐이다.

5호유적지 토템유물 및 그 예제의의

은허5호유적지(전통적으로 말하는 "부호묘")의 발견은 여러 건의 현조토템실물을 보여준다. 이들 유적은 조형, 방위, 재질과 명문등의 방면에서 현조가 예제에서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아독존대석조(唯我獨尊大石雕): 유적지내에서 대형 백색대리석조조(속칭 "석효(石鴞)")가 출토되었는데, 체형이 높고 크고, 자태가 장엄하다. 이 조각상은 정남(正南)방향을 향하고 있는데(제왕의 방향), 고대에 왕왕 제왕 혹은 시조의 상징물을 남향으로 놓아두었다. 석질은 백색대리석인데, 고증에 따르면, 이는 은나라사람들이 백(白)으로 원래 현흑(玄黑)을 의미하는 특수한 안배라고 본다. 은나라때 백색을 숭상하는 습속이 있었고, 동시에 기물의 장중과 신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 석조에는 "유아독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왕자지고무상(王者至高無上)"과 같은 뜻으로 새의 숭고한 신분을 암시한다. 고고학자 옹위화는 이렇게 지적한다: 어응은 "수중왕자(水中王者)", "전쟁에 나서는 장수와 같다(如出征之戰將)"라고 불리고, "왕저(王雎)"라고 불리는데, '지고무상'을 의미한다. 이를 보면, 현조의 이미지는 특수한 대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어응형옥패(魚鷹形玉佩): 유적지에서 대량의 옥기(玉器)가 출토되었는데, 그중에서 동물형 옥조(玉雕)가 다수를 점한다. 금조류(禽鳥類) 옥조에는 학(鶴), 매(鷹), 올빼미(鴟鴞), 앵무(鸚鵡), 비둘기(鴿), 제(燕雛), 가마우지(鸕鶿, 어응), 거위(鵝)등. 어응형옥패의 조형은 사실적이고, 옥질은 매끄러우며, 쌍치형(雙稚形), 단치형(單稚形)등의 패건(佩件)이 자주 보인다. 옥패등 부장품의 상징적인 의의는 귀족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를 차는 사람은 현조토템과 가까운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목할 점이라면, <고공기(考工記)>등 예서에 옥패, 황(璜)등 부녀자 혹은 관료의 장식품을 기록하고 있는데, 어응문양은 은나라때 극히 존귀한 배장품에만 나타나서 그 비범한 신분을 엿볼 수 있다.

예제지위(禮制地位): 위의 실물조합이 설명하는 것은 현조토템이 은상의 예제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조형과 제사(題詞)는 모두 제왕이나 시조와 관련이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조는 제곡(帝嚳)의 대표적인 토템이다. 어응의 깃털색은 유현(幽玄)하고, 날개짓에 힘이 있어, 제왕의 상징에 부합한다. 동시에, 현조(어응)은 간적이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다는 신화부호에도 부합한다. 즉 은상의 원류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은허5호유적지 유물은 현조에 대한 경봉(敬奉)을 나타낼 뿐아니라, 선인숭배(先人崇拜), 국조전승(國祚傳承)과도 관련이 있다. 이를 보면, 이들 토템실물은 예술품일 뿐아니라, 은상의 종법예제의 구성부분이라 할 수 있고, 그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제곡씨일족의 "부원(父源)"신앙과 정통권위라 할 수 있다.

종묘제도, 혈연등급 및 부호의 신분고찰

중곡의 고대종묘제도는 시조(始祖)와 조모(祖母)에 대한 숭배를 강조한다. 은상의 씨족이 으뜸으로 모신 것은 제곡 및 그의 계보시조이다. 오호유적지의 기능과 신분은 혈연과 예제로 이해할 수 있다:

간적(簡狄)이 종모(宗母)이다: <사기.은본기>에 따르면, 간적은 제곡(高辛氏)의 차비(次妃)이고, 은의 시조인 설(契)의 모친이다. 은상족은 '설'을 시조로 하니, 간적은 자연스럽게 '족모'로 존경받는다. <예기>, <고공기>등의 의례에 따르면, 종묘제사는 통상적으로 시조부부(始祖夫婦)와 그 모친(母)으로 한다. 옹위화의 연구에 따르면, 은허5호유적지는 "은나라사람들의 종모인 간적의 종묘유적지"이다. 간적의 신분은 제곡의 비로서, 설을 낳았으니, 은족의 시모(始母)이다. 이 유적지는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지상제사건축과 지하의관총(靈位)이다. 이는 조묘(祖廟)의 예제에 부합한다.

자귀모영(子貴母榮): 설이 탄생한 후에 상(商)의 땅에 봉해지면서 은나라사람들은 영토를 가지게 된다. "은(殷, 鷹과 발음이 같고, 글자모양이 鷹의 형상이다)"은 원래 맹금의 모양이며, 이는 그 족속이 새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간적은 설의 모친으로, 아들때문에 존귀해지고, 나아가 종교적지위로 상승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조(어응)토템은 설의 신성한 기원과 제곡의 정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유적지의 현조토템의 신성성과 "유아독존"은 바로 은나라사람들이 설로 흥하고, 모친이 아들로 인해 존귀해졌다는 가족의식을 나타낸다.

부호의 신분한계: 만일 5호유적지를 부호묘(婦好墓)로 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신앙과 부합하지 않는다. 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호"가 설사 무정(武丁)의 왕후(王后)라 하더라도, 설사 관직이 존귀하다고 하더라도 은나라 종족계통에서 종모급의 제사를 받는 인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고, 더더구나 씨족의 시모가 될 수는 없다. 그녀는 제곡씨족의 '부원'의 법통이 없다. 그러므로, 부호와 현조토템을 연결시키는 것은 완전히 부적절하다. 반대로, 간적은 제곡의 배우자로서 고신씨의 '현조'토템혈맥을 대표하니, 그녀를 종묘에 제사지내는 것은 현조숭배의 신성성과 부합한다. 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은허5호유적지는 실은 신비(辛妃) 간적의 종묘유적지이다. 부호묘가 아니라. 이 관점은 과거 M5묘를 부호 개인의 묘장이라고 보는 견해를 뒤집는다. 5호유적지가 담고 있는 설을 은나라의 시조로 하는 정통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결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각도에서 보면, 은상전설의 "현조"토템은 어응(가마우지)이지 제비가 아니다. 은허5호유적지에서 출토된 현조석조와 옥패는 조형, 방위, 제사등 각도에서 모두 선명하게 제곡씨족(고신족)의 상징을 드러낸다. 종묘예제와 혈연전승을 종합하면, 간적은 현조(어응)토템과 맞는 종묘의 주인이다. 그녀의 지위와 제사의미는 부호의 신분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5호유적지는 신비.간적의 종묘유적지로 보아야 한다. 이는 은상역사와 부호신분연구에 새로운 고고학적 학술적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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