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고고 ㅣ "곤륜석각(昆侖石刻)"의 3가지 의문점
중국과 문화/중국의 고고 ㅣ "곤륜석각(昆侖石刻)"의 3가지 의문점
글: 이호(李豪)

진나라때 석각(석고문)

진공1호대묘 명문석경
"곤륜석각" 세상에 알려지자, 광범위한 토론이 벌어졌다. 전문학자와 사회대중이 속속 참여하였으며, 문자, 서법, 역사, 고고, 지리등 여러 학과에서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논의가 분분하여,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필자의 생각에 곤륜석각에는 3가지 방면에서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다고 본다.
진나라때 석각은 보기 드물다.
먼저, 진나라때의 석각은 보기 드물다. 지금 알고 있는 진나라때의 석각은 주로 진시황이 천하를 순유할 때 세운 것으로, 역산(嶧山), 태산(泰山), 낭야대(琅瑘臺), 지부(芝罘), 동관(東觀), 갈석(碣石), 회계(會稽)등 7곳이 포함된다. 그외에 고고학적으로 우연히 새롭게 진나라때 석각이 발견되기도 한다(孙伟刚《西安阎良新发现秦石刻及相关问题研究》,《文物》2019年第1期). 진나라때 석각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선진(先秦)시기의 석각도 아주 보기 드물다. 고고자료에 따르면, 중국최초의 고대석각문자는 상(商)나라때로 은허석궤명(殷墟石簋銘)이다. 다만 이는 기물의 제각이다. 진나라에서 비교적 일찌기 문자명각을 제작했다. 그러나 단지 진공대묘석경명(秦公大墓石磬銘), 석고문(石鼓文), 저초문(詛楚文)등 소수의 석각만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나라이전의 석각은 왜 이렇게 보기 드문 것일까? 조초(趙超) 선생은 중국고대건축은 오랫동안 흙과 목재를 재료로 하였고, 석재를 쓰는 경우가 적었기때문에, 석재를 다루는 기술이 비교적 낙후되었고, 그리하여 중국고대 석각의 발전을 제한했다고 보았다. 그는 진,한이전의 문물유적중에서 오직 주초(柱礎, 주춧돌)와 산수(散水, 집터서리. 빗물을 막기 위해 집둘레를 돌로 쌓는 것을 가리킴)부분에 석재를 쓰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건축물부분에 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리하여 문자석각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정사의 기록도 이 점을 방증한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이십팔년, 진시황이 동으로 군현에 갔고, 추역산(鄒嶧山)에 올랐다. 돌을 세우고, 노(魯)의 유생들과 상의하며, 돌에 글을 새겨 진나라의 덕을 칭송했다." 사마천은 여기에서 진시황과 노의 유생들과의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상의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해의 낭야대각석에 대하여는 <사기.진시황본기>에 기록이 있다: "진왕이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로 이름했다. 그리고 동쪽지방을 다독이기 위하여 낭야에 이른다. 열후무열후 왕리(王離)...오대부 양규(楊樛)가 수행했고, 해상에서 논의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여러 신하, 재상이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여, 금석에 새겨서 표시하고자 했다." 이를 보면, 진시황이 각석을 세워 공덕을 칭송한 것은 유생, 대신들과 임시로 상의한 후에 조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각석송덕이 진나라때 그다지 성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반박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이전의 석각은 연대가 너무 오래되어 문자가 마모되어서 보기 드문 것이 아니냐고. 진나라때부터 북송때까지, 그리고 북송때부터 지금까지는 개략 천년가량이 된다. 우리는 북송을 분계점으로 이 문제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곤륜석각"은 마애석각(摩崖石刻)류에 해당하므로, 우리는 중점적으로 진나라이래의 마애석각의 상황을 분석해보자.
북송시기, 금석학(金石學)이 점차 흥성한다. 학자들은 노력을 다해서 석각을 소장, 수록 및 연구했다. 양송에 이르러, 저명한 금석학자 조명성(趙明誠)이 편찬한 <금석록(金石錄)>은 이미 금석 2천종을 수록했다. 심지어 일본석각까지 포함시켰다. 다만 거기에 수록된 진나라때의 석각은 태산, 낭야대, 지부, 역산각석의 4종이다. 선진석각은 오직 "길일계사(吉日癸巳)"각석, 석고문, 저초문등 6종에 불과하다. 그중 마애석각은 단 한 곳이다. 즉 "길일계사"각석이다. 그것도 조명성은 의심했다. 채복전(蔡福全)의 <농남금석제벽췌편(隴南金石題壁萃編)>의 기록에 따르면, 농남(감숙남부) 일대에 지금까지 보존된 북송의 마애석각은 20곳이다. 그리고 허력(許力)의 <당시(唐詩)의 길 위의 당나라때 마애>에 기록된 것을 보면, 절강성에 현존하는 마애는 47곳이다.
같은 시간길이, 같은 강역내에, 석각의 풍화정도는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비각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마애석각이 손쉽게 훼손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진나라때 대량의 마애석각이 존재했다면, 북송시기에 마땅히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자들이 발견하고, 수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이건 비록 진나라때 마애석각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진나라때의 마애석각이 많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진나라때의 강역내에서, 천년동안 마애석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진나라때의 것으로 의심되는 "곤륜석각"이 진나라의 강역밖에서, 그리고 상대적으로 보존이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것이 첫번째 의문점이다.
"곤륜석각"의 결손
다음으로 "곤륜석각"의 결손(缺損)이다. "곤륜석각" 사진을 관찰해보면 우하쪽 귀퉁이에 분명하게 결손이 있다. 그리고 아주 평정(平整)하여 마치 같은 시기에 떨어져나간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석독(釋讀)한 문구를 보면, 제1행은 "황제(皇帝)" 두 글자이고, 제2행은 "사오(使五)" 두 글자이다. "오(五)"자는 제3행의 "대부(大夫)"와 연결하여 고정된 단어조합을 이룬다. 이것이 설명하는 것은 석각을 조각할 때, "오(五)"자의 아래쪽은 이미 결손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3행의 "대부신예(大夫臣翳)"에서 석독한 사람들이 "예(翳)"자를 보완해 넣은 이유는 첫째, "신"자의 아래에 확실히 필획의 흔적이 남아 있고, 둘째, 뒤의 문구에서 두 차례에 걸쳐 "예"자가 나오는 것으로 추단하여, 이곳에 분명히 "예"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 보면, 석각을 조각할 때, "신"자의 아래는 완전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석각이 진짜이고, 정상적이고 자연적으로 풍화된 것이라면, 현재처럼 이렇게 평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두번째 의문점이다.
"곤륜석각"의 행문(行文)
마지막으로 "곤륜석각"의 행문(行文)이다. "곤륜석각"의 문자에서 어떤 학자는 "이십육(廿六))"을 "삼십칠(卅七)"로 해석한다. 이전에 어떤 학자가 석각연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것에 대한 대응인데, 석각의 행문문제는 주목하지 않은 듯하다.
칭위(稱謂)를 보면, "곤륜석각"의 짧은 3마디 글 중에서 "예"라는 자칭(自稱)이 3차례나 출현한다. 이는 고대한어에서는 항상 주어를 생략하는 용법과 크게 차이가 있다. 특히, 세번째 "예"자는 이 석각에서 생략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어법상으로 보면, 두번째 구절의 "예이삼십칠년삼월기묘거도차(翳以卅七年三月己卯車到此)"에서 "이(以)"는 뒤의 두 개의 목적어, 즉 "삼십칠년삼월기묘"와 "거"를 수식하는 개빈단어를 구성한다. 그리하여 동사어 "도(到)"를 수식한다. 다만, "이삼십칠년삼월기묘도차(以卅七年三月己卯到此)"와 "이거도차(以車到此)"에서 "이(以)"의 용법과 의미는 서로 다르다. 전자는 행위의 발생시간으로 현재의 "재(在)"에 상당한다. 그리고 후자는 행위를 의존하는 도구를 가리키는 것이어서 현재의 "용(用)"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문제없는 문구라고 본다면, 단지 "삼십칠년삼월기묘"를 "거"를 형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이 문구는 "예가 삼십칠년삼월기묘일의 수레(車)를 타고 이곳에 왔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이미 이곳에는 고정된 운행노선이 있었다다는 것이 되는데, 이건 확실히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이것이 세번째 의문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곤륜석각"에는 의문점이 존재한다. 그에 대하여는 추가적으로 분석하고 연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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