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배설물’이 초래한 구조적 실패가 트럼프 야심 부추겼나
‘악마의 배설물’이 초래한 구조적 실패가 트럼프 야심 부추겼나
글: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
[하상섭의 글로벌 전망대] 에너지 패권의 제물 된 베네수엘라
경제적 이해와 군사적 전략 결합한 ‘미국 우선주의’로 반미벨트 허물어
중동 의존도 높은 한국, 인프라 참여해 석유 공급망 다변화 기회 삼아야

2026년 1월 반전 활동가들이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한 건물 벽에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은 석유 탈취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AP=연합뉴스]
2025~26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서반구 재정복’이라는 기조 아래 경제적 이해와 군사적 전략이 긴밀히 결합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 노선은 인권이나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규범적 가치보다 국가의 실익과 힘의 우위를 우선시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에 가깝다. 이러한 특징은 중남미 정책에서 특히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6년 1월 연초에 단행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개입, 즉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 축출 작전은 이러한 트럼프 외교 노선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사례다.
미국의 대(對)베네수엘라 압박은 표면적으로는 독재 정권의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구조적인 전략 목표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핵심은 바로 에너지 패권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 글로벌 석유 질서와 에너지 시장 재편 과정에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본 글은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군사적 개입 배경을 살펴보고, 그 이면에 놓인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 경쟁과 글로벌 에너지 질서 변화의 흐름을 분석하고자 한다.

2026년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압송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트럼프 X 캡처]
‘자원의 저주’, 석유에 올인하다 산업 붕괴
베네수엘라는 약 3000억 배럴 이상에 달하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 국가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캐나다를 넘어서는 규모로, 이론적으로는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국가다. 그러나 현실에서 베네수엘라는 풍부한 자원을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오히려 석유는 베네수엘라 경제와 정치 체제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오랫동안 석유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이로 인해 농업과 제조업 등 비석유 산업은 경쟁력을 상실했고, 산업 구조는 점차 원자원 중심으로 퇴행했다.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국가 재정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한 경제 체제가 형성됐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로 설명된다.
이 개념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인물이 바로 베네수엘라 전 석유장관 후안파블로페레즈 알폰소다. 그는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Oil is the devil’s excrement)”이라는 표현을 통해, 석유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파괴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의 진단은 베네수엘라 현대사의 궤적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석유 수출로 대규모 외화가 유입되면서 통화가치는 상승했고, 이는 비석유 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급격히 약화시켰다. 수입 중심 소비 경제가 확산되면서 산업 기반은 더욱 취약해졌다.
석유 수익은 또한 정치적으로 활용됐다. 단기적인 무상 복지와 보조금 정책이 남발되면서 국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도 국가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에 익숙해졌다. 이는 생산성과 책임성을 약화시키는 지대추구 국가적 특성을 강화했다. 동시에 막대한 석유 수익은 정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되며 부정부패와 권력 집중을 심화시켰다. 차베스와 마두로 정권은 국영 석유기업 PDVSA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고, 전문성보다는 충성도가 인사 기준이 되면서 기업 운영은 급격히 비효율화됐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국제 유가 하락과 미국의 제재가 겹치면서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본격적으로 폭발했다. 석유 산업에 대한 재투자와 유지보수가 장기간 방치된 결과, 기술 낙후와 인프라 붕괴가 심화했고 생산량은 급감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유 생산 순위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석유는 더 이상 기회의 자원이 아니라, 갈등과 붕괴를 상징하는 자원이 됐다.
정치적으로도 상황은 악화했다. 마두로 정권(2013~2025년)은 반대파 탄압, 선거 조작 의혹, 언론 통제 등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 왔고,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민주주의가 결여된 권위주의 국가로 평가해 왔다. 경제 붕괴와 하이퍼인플레이션, 외화 부족은 국민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했고, 수백만 명의 국민이 식량과 의약품을 구하지 못한 채 국외로 탈출했다. 국제기구들은 이러한 위기를 외부 제재의 결과라기보다, 부패와 비효율적 통치가 누적된 구조적 실패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 명분보다 전략적 이익 충실
트럼프 1기 행정부(2017~2021년)는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하면서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 수호’를 핵심 명분으로 내세웠다. 마두로 정권의 부정선거와 반정부 시위 탄압, 언론 통제는 미국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활용됐다. 2019년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 조치는 이러한 기조의 상징적 사례였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적 개입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일관성 논란을 불러왔다. 같은 시기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 등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베네수엘라 개입이 순수한 민주주의 수호 차원이 아니라는 의문을 낳았다. 실제로 많은 분석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전략을 에너지 외교의 연장선으로 해석해 왔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 미국에는 전략적 이해관계의 핵심에 해당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제재 정책은 단순한 외교 압박을 넘어, 베네수엘라 경제와 에너지 산업을 마비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PDVSA에 대한 금융·기술 차단은 생산 능력을 급격히 저하시켰고, 이는 글로벌 석유 시장과 미국 셰일 산업에 중장기적으로 유리한 구조를 형성했다.
트럼프 2기(2025년 이후)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전략은 더욱 노골화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을 통해 ‘서반구 회복’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고, 베네수엘라 문제를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지정학적 과제로 재정의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정권을 “미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외세의 침투를 저지하는 것이 미국의 ‘명백한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명백한 사명설(Manifest Destiny)’이다. 이는 19세기 미국의 팽창 이데올로기로, 미국은 신의 뜻에 따라 질서를 확장할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신념을 내포한다. 이 사상은 먼로 독트린, 냉전기의 반공 개입, 중동 전쟁 등 미국 대외정책의 심층적 정당화 논리로 반복 활용돼 왔다. 트럼프주의에서 이 논리는 “미국은 규칙을 따르는 국가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국가”라는 인식으로 재해석된다.
에너지 정책에서도 이러한 사고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셰일 산업 경쟁력 회복, 국제 유가 통제력 확보, 비우호 산유국 약화를 목표로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구조 전환을 압박해 왔다. 제재의 선택적 완화는 정권 교체 또는 체제 개편 시 미국 기업의 진입을 유도하기 위한 조건부 전략으로 활용됐다. 국영 석유기업의 구조조정과 민영화 가능성 역시 이 맥락에서 거론됐다. 2026년 1월 군사으로 변화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으로 부상하며 ‘에너지 독립’을 달성했고, 이를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석유·가스 개발 규제 완화와 수출 확대를 통해 ‘에너지 패권(Energy Dominance)’ 국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OPEC 국가들과 유가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베네수엘라는 이 경쟁 구도에서 중요한 전략적 카드로 부상했다. 베네수엘라 원유가 미국의 통제 속에 시장에 재진입할 경우, 글로벌 공급량 조절을 통해 유가를 안정시키고 미국 셰일 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2023~2025년 제재를 일부 완화하며 베네수엘라 원유의 유럽·아시아 수출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수급 조절에 개입했다.

반미 좌파 포퓰리즘의 결과 베네수엘라 화폐 가치는 폭락했다.

베네수엘라 화폐는 딱지와 모자를 만드는 용도로 전락했다.
미국 앞마당에서 중·러 몰아내기
동시에 중남미는 미·중·러 지정학 경쟁의 최전선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인프라·통신·에너지 분야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왔고, 러시아 역시 군사·정보 협력을 강화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미국의 전통적 영향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며, 베네수엘라·쿠바·니카라과를 ‘폭정의 축’으로 규정하고 압박을 강화했다. 2026년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은 이러한 맥락에서 냉전식 개입의 현대적 부활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중요한 전략적 함의를 갖는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중동 의존도가 높아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중동 외 지역에서 한국이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유국이다. 향후 베네수엘라 제재 완화와 국제 복귀가 본격화될 경우, 에너지 인프라 복구와 대규모 국제 투자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공기업과 정유·플랜트·EPC 기업들은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미국과 UN 제재 체계를 고려한 신중한 외교적 조율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 협력과 인도적 지원, 인프라 재건을 통한 신뢰 구축은 충분히 모색할 수 있는 영역이다. 자원과 에너지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한국은 더 이상 수동적인 에너지 소비국에 머물 수 없다. 베네수엘라와 같은 전략적 자원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느냐는 한국의 미래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국제적 외교 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 한국외대 중남미지역학(석사), 영국 버밍험대학 국제정치경제(IPE 석사), 리버플대학 중남미지역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를 거쳐 현재 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에 재직 중이다. 역서 <양 떼의 재앙>, <중앙아메리카: 분열된 국가> 등과 공저 <라틴아메리카 생태 위기와 부엔 비비르>, <한-라틴아메리카 기후협력> 등을 펴냈다. ㅣ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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